‘그리스도인’ 그 이름의 의미와 권위 (1)
교회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한국교회의 정체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질적 사역으로의 회귀를 통한 건강한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2001년 설립되어 23년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교회를 건강하게, 성도를 온전하게’라는 신념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컨설팅연구소(김성진 소장)는 이런 간절한 고민들을 돌아보고, 교회 공동체에 도움이 될 10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급변하는 시대에 세대 간 문화와 소통의 간격의 격차가 점점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생살이 자체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울 때가 많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은 “모든 족속으로 주님의 제자 삼으라”는 말씀 만큼의 무게감을 갖는다. 그러나 정녕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하여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하거나 지침을 주거나 교육과 훈련을 하는 영역의 부족함은 다소 아쉽다.
그리스도인을 영어로 ‘Christian’이라고 한다.
첫째,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삶의 양태(樣態)를 갖고 살게 되는데 소속이 바뀌어지면 그 소속된 곳에 맞는 생활 양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마치 대학을 다니는 젊은 청년은 대학생의 생활양식을 갖고 살다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 군인으로서의 생활양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둘째, 군사 용어와 관련이 있다. 로마시대의 시저 친위대를 ‘Caesarian’이라고 하였다. 시저의 군인이라는 의미인데 그리스도인(Christian)은 Christ + ian으로서 그리스도의 용병, 친위대라는 의미로 세상 속에서의 영적 전투를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친위대로서의 그리스도인이다.
셋째, 별종의 사람들이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안디옥교회에 불리우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별종이었을 것이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고, 추상적 개념도 아니다. 믿음은 삶이며 가치관의 변화를 갖는 것이고, 삶의 목적과 가치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가 極(극)과 極(극)으로 변화되는 것이 믿음이기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가진 자를 접할 때 ‘별종’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 별종의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 한다.
넷째, “오직 그리스도만 있고 나는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Christ + I(I) a(Am) n(Nothing)’으로서 나는 없음을 고백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갈 2:20)를 일컫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으로 양육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양식을 갖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를 통하여 전인적인 그리스도인다운 루틴(Routine)을 형성하게 하여, 세상에서 살아가게 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목회는 회무와 경영이 아니라,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세워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목양자’, ‘목자’, ‘목사’라고 한다(엡 4:11-12).
각 사람이 세상의 여러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종교인이 아닌 종교인 그 너머의 신자로 세워가고 신자를 주님의 형상을 닮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분이 남긴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제자가 되도록 힘써 돕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다(골 1:29). 제자들을 통하여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워가는 사역으로 승화해야 한다.
그들이 모인 공동체를 교회(에클레시아: ‘불러낸 자들의 모임’)라고 하며, 그 교회공동체를 섬기고 이끄는 자가 목회자이고 목회자들이 사역하는 것을 ‘목회’라 한다. 목회는 궁극적으로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자(그리스도인)가 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목회는, ‘목양’과 ‘회무’의 결합어로 양무리를 위해 존재하며 교회 공동체를 경영하고 운영하는 사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하여 목회자는 권세와 권능과 권위를 가져야 한다. 이 세 단어는 각기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우리는 그 지위가 상승되었고,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목사의 직무를 가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권세를 가진 것이 되지만, 권세는 타인에게 인정되어질 때 비로소 권세의 지위가 견고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때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일컬어서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며, 그때 주어지는 것이 ‘권세’이다.
‘권능’은 요 1:12, 행 1:8에 기록된 바와 같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이며,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은사와 재능과 능력이 표면으로 나타나는 힘이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권능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목양이다.
‘권위’는 마 7:29, 막 1:27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의 삶과 사역은 그 당시의 서기관와 바리새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권위가 나타나셨다. ‘권위’는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력과 증거들을 갖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들과 다른 권위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권세와 권능 그리고 권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러나야 하는 신앙의 본질이다.
목회자는 이러한 본질적 권세와 권능 그리고 권위가 드러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목회자 자신에게 권위과 권능이 드러나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워 이 세상으로 파송하는 선교적 교회로서의 목양이 한국교회 안에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